우리가 찾아간 탑골 공원에는, 예상과 달리 너무나도 많은 노인들이 나와 계셨다. 이렇게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이 곳으로 잡아끌었던 것은, 그래도 나의 할아버지와 같은 의미없는 기다림을 조금이라도 재미있는 것으로 바꾸어보려는 의도인 것 같아 조금이나마 안스러움이 덜어지는 것 같았다. 매우 춥고, 어떠한 시설이나 특정한 꺼리가 준비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함께 모여 이야기라도 나눈다면 조금이라도 덜 지루한 기다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할아버지 방과 내 방은 서로 마주보고 있다. 때때로, 내 방 맞은편에 빼곰히 열려있는 방문을 통해 훔쳐보게 되는 할아버지의 일상은, 단지 그 일부분만을 볼 뿐인 나 조차도 두려워질만큼 너무도 단조롭고 외롭다. 잠을 자고, 밥을 먹고, TV를 보는 것의 반복. 가끔 어디론가 잠시 외출 하는 것을 빼고는, 할아버지의 일상에서 그 이외의 어떠한 새로운 일도 기대할 수가 없다. 그것은 마치, 어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며 무의미하게 되풀이하는 반복적인 행동과 닮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루하게 하루하루 겨우 시간을 보내면서, 다만, 어서 끝이 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주의깊게 그들을 관찰해보니, 이 곳에서의 그들의 행동도 다만 단순한 서성거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종의 무료함을 달래볼까 해서 나와본 것일 뿐, 끝이 나기를 무기력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나의 할아버지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
마지막까지의 시간들을, 이전에 자식을 위해 아내를 위해 돈을 벌고 열심히 일을 했던 것처럼 일종의 '살아있는 시간'으로 만들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지나친 욕심일까. 아니면 그들은, 정말 이렇게 단지 쉬고만 싶어하는 것일까.